[없음/없음] #잉크가_번졌다로_시작하는_글쓰기 - 없음

written by. 아스카폴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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작성일2017.12.20 03:52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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* 2015.03.24 메모장에 저장한 글

* #잉크가_번졌다로_시작하는_글쓰기

 

 

Written by. 아스카폴

 잉크가 번졌다. 한숨이 나왔다. 이로서 정확하게 11번째 다시 도면을 그려야 하게 생겼다. 남들과 똑같은 제도판에서 똑같은 자로 똑같이 작업을 하는데 왜 나만 번지는 건지 모르겠다. 그래도 10번째까지는 그나마 얼마 안 그렸던 것인 거라 괜찮았는데, 이건 거의 다 완성되었던 거라 괜찮지 않았다. 
 힘이 쭉 빠졌다. 어느새 밤 12시. 고개를 뒤로 쭉 젖히다 주변을 돌아봤다. 북적거리던 설계실엔 어느새 나 말곤 아무도 없었다. 남아 있는 거라곤 같이 하던 애들이 남겨놓은 완성된 그들의 작품들 뿐이었다. 
 이런 장면을 봐도 이젠 아무렇지도 않다. 한 두 번도 아니기 때문이다. 나는 그들보다 능력이 부족했고, 그런 몸으로 할 수 있는 건 노력 뿐이었다. 그들보다 배로 많은 시간을 들인다 해서 나오는 결과가 그들보다 뛰어난 건 아니었지만, 그래도 그들과 얼추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것이어서 만족했다. 하지만,

 "좀 지친다."

 빈 설계실에 내 목소리가 울렸다. 난 내가 말해놓고 깜짝 놀랐다. 너무 큰 소리로 돌아왔기 때문이다. 

 "많이 힘드냐."

 이번엔 내 목소리가 아니었다. 나는 더 깜짝 놀라서 주위를 돌아봤다. 그러자 눈에 들어오는 건 선배였다. 내게로 걸어오는 선배. 내가 말도 제대로 못 꺼내고 어버버 거리고 있자, 선배는 연구실 일 때문에 아직 안 갔다며 웃어줬다. 선배는 내 뒤에 서더니 내게 어깨동무를 한 채 내가 그린 걸 바라봤다. 나는 창피해서 고개를 푹 숙였다.

 "오, 제법인데. 잉크로 선 딴 거 두깨 잘 살렸네. 야, 네가 선 하나 똑바로 못 그어서 낑낑거리던 게 얻그제 같은데, 많이 늘었네."
 "아니에요. 아직 부족한 걸요. 이것도 선 번져서 다시 해야해요."
 "야 야, 이걸 다시 한다고? 괜찮아, 이정도는. 어차피 컬러링 할 거잖아? 이정도면 가려져, 그냥 해."
 "그럴까요?"
 "그럼."

 선배의 말에 잉크가 번진 부분을 뚫어져라 쳐다봤다. 다시 보니 괜찮은 것 같기도 하다. 어떻게 할까.

 "괜찮다니까. 그냥 해. 그리고 너무 자신감 없어 하지 마. 내 눈엔 오십보 백보야. 오히려 저 정도만 해놓고 완벽하다고 집 간 애들보단 조금이라도 더 완벽하게 하려고 애쓰는 네가 더 낫다."

 선배의 난데 없는 칭찬에 선배를 올려다봤다. 선배는 웃으시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셨다. 

 "잘하고 있어."

 그 말 한마디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. 뚝뚝 흘리는 눈물에 선배는 웃으시며 나를 꼭 안아주셨다. 선배의 옷에는 내 눈물이 번졌고, 내 가슴엔 선배의 웃음이 번졌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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